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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꿈

 

주변에 딸 일곱을 훌륭하게 길러 낸 한 어머니가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 어머니는 매사에 진취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의 평소 신념은 "여자도 반드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딸 일곱 중에서 다섯딸은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딸 일곱의 적극적인 사회활 등을 주장한 대가로 손주키우기가 그녀의 몫이 되었다. 가끔 그녀의 세 살짜리 아이에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손주 5명을 돌보고 있다.

그년의 넷째 딸은 의사였다.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소유한 건물의 2층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머니댁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그 딸이 자신의 두 아이에게만 몰두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런 후 그녀는 운영하던 병원을 과감하게 폐업하였다. 그러면서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홀가분하게 분가하였다. 한동안 그 어머니는 상심의 눈물을 흘리셨다.

오랜 시간 그녀는 딸을 설득하였다. "아무리 전문적이 기술이라 해도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 "반드시 어머니가 자식 양육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그럼에도 넷째 딸은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는 누가 공부시키며, 갓난애는 영양은 누가 책임지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미련없이 집안에 들어앉았다.

그 어머니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함목되어 재능과 능력 발휘를 포기한 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지 한동안 서운해 하셨다. 최근 일부 직업여성들은 사회 활동 때문에 소홀한 가정 돌보기에 대해서 상당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죄의식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있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편의 성공, 가정의 행복'은 여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부르짖는 현모양처 신화를 되짚어 보자. 왜 자녀 양육의 문제에서만 여성들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가. 우리 사회는 "극성스런 어머니들의 교육열에 주눅드는 어린이 흔들이는 주부들의 탈선으로 붕괴되는 가정, 남편의 기를 죽이고 살리는 아내들..." 이라는 의제를 설정하여 마치 여성을 사회적 일탈의 주범으로 지적하곤 한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바로 이러한 현상 이면에 여성의 현모양처 역할이 교묘하게 재화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여성들을 현모양처 신화 속에 묶어두고자 해도 칠순을 바라고는 이 어머니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허위위식을 거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직업 여성이란 가정일을 소홀히 하는 '이기적인 존재'인 반면 전업 주부는 사회에 뒤떨어진 '무능력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 이미지로 인해서 두 유형의 여성들이 서로 분열되고 대립되어 왔음을 우리는 인정하기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가 가사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진 않으며, 또한 가사노동을 오직 여성들만의 몫으로 규정짓는 고정된 역할 분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모양처의 꿈에 길들여진 일부 전업 주부들을 삶의 여러 고비 야만 제대로 평가받지 않겠는가" "도대체 내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전업 주부의 선택이 자율적이지 않은 한 건전한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업 주부의 역할에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전업 주부의 삶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전업 주부의 사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또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커다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주목하자. 생각해 보면, 가사노동처럼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체로 가사노동이란 자아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무가치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제 이러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전업 주부들의 가정적인 에너지는 반드시 사회의 에너지로 연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동안 단저롭고 소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가사노동은 사회 발전의 굳건한 초석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업 주부들의 쓰레기 봉투 아껴쓰기는 환경 보전 운동으로, 돈 봉투 없애기 바람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과소비 줄이기 노력은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족에 대한 관심은 북한 동포 돕기의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렇듯 시민 운동의 미래는 전업 주부들의 손에 달려 있다. 전업 주부의 역할에 사회적 의미를 붙여 넣어 준다면 아마 현모양처의 꿈은 절대 여성의 자아실현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업 주부의 자율성 확보가 남녀 평등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