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is responsive to your Click

?이승희와 누드

 

이승희! 언론은 그녀를 "인터넷이 낳은 최고의 누드모델","인종차별의 장벽을 깬 자랑스런 한국인" 따위의 수식어로 포장하여 떠들어댔다.

이승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우리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누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은 여성을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 격하시킨다는 것이다. 즉, 한 계단 아래의 인간으로 여기게 한다는 것이다. 나도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플레이 보이>에 나의 누드가 실렸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힘을 갖는 것은 누구인가© 대중인가, 나인가, 사람들은 내게 편지를 보내 온다. 사인을 요청한다. 환호한다. 한마디로 그들을 끌어들인 힘은 나의 것이다. 옷을 입고 벗을 자유, 그건 전적으로 나의 것이다. 나의 누드는 내가 내 삶에 대해 갖는 결정권이다. 그건 파워 풀한 것이다. 그 생각은 나를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한다."

그녀의 주장처럼, 분명히 벗는 건 자유다. 언뜻 보면 이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당당한 항변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벗는다고 이승희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벗는 것에 대한 파워를 실어 주는 셈이다. 누가 벗는 행위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가© '이승희'나 '데미무어'와 같이 잘나가는 스타들의 "벗기"는 왜 그렇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는 것일까


예전에 우리는 주변에서 정신나간 사람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나간 여자들의 나체를 "아름답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들에게 거침없이 돈을 지불 라면서 흥분하거나 열광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벗기'는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급진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 현상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이들에 의하면, 포르노란 바로 남성이 여성을 경시하는 기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포르노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반면 여성은 단지 그 형식과 내용을 메우는 종속적인 존재일 뿐이다. '벗기기'는 남성의 몫이 되지만 '벗기'는 여성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안드레아 드워킨( A.Dworkin )은 포르노를 남성의 본능 속에 내재되어 있는 권력의 분출로써 해석하였다. 포르노란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 능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믿음을 구체화한 결과인 셈이다.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각선미를 뽐낸다거나 카메라 앞에서 온갖 섹시한 자세를 취하는 여자들은 분명히 능동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누가 이 여자들을 통제하는가© 자신의 신체를 타인에게 자랑하는 사람들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나체로 온 거리를 헤매는 정신나간 사람을 비난할 수 없듯이 우리는 여성의 벗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대신 여성을 벗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를 밝혀 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뒤따를 때에만 여성들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승희의 벗기'와 관련하여 그를 싸고도는 언론의 호들갑이 마뜩찮다. 왜© 그것은 바로 언론이 여성을 상품화하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성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누두모델이 상업화의 천국인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이 나라의 언론까지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불우한 가정 환경을 극복한 한 지적인 여성이 누드 모델의 정상에 우뚝 섰다'라는 의제 설정은 상투적인 언론의 성공 이데올로기 수법이 아닌가.

이미 우리는 지난 70년대에 '무공해 수출'이라는 미영하에 매춘 정책에 발벗고 나섰으며 그것으로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얻은 경험이 있다. 포르노 스타를 마치 국위선야하는 애국자로 끌어올리는 우리의 언론 문화를 외국인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이승희가 13일간의 한국의 체류로 벌어들인 돈은 자그만치 수십 억이라고 한다. 이러한 보도가 가뜩이나 물질만눙주의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의식을 왜곡시키지 않을까 무척 걱정스럽다. 탁월한 '스타 제조기' 언론이 앞으로 만들어 낼 성공 신드롬의 충격은 얼마나 다양할까© 또 성을 밑천 삼은 이같은 성공을 당연하게 수용하는 최근의 저급 문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산적한 여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민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본주의의 한탕 주위에 목숨 걸고 '대중 끌어들이기' 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