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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텔레비전

 

'애인'은 한때 장안을 강타한 MBC-TV미니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이 드라마에는 미모의 연기자 황신혜가 등장하였다. 주인공 항신혜는 '처녀같은 외모를 지닌 능력있는 커리어우먼' 이었다. 드라마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그렇고 그런"에피소드였지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시청자들은 유부녀의 사랑놀음을 대리 체험하기 위하여 수상기 앞에 모여들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상품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래서 모든 생산물은 팔려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자본가들이 대부분의 생산 수단을 소유한, 반면 다수의 직접 생산자들은 생산 수단에서 분리된 채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여성의 본질 역시 이같은 사회구조의 논리 속에서 구현된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란 바로 여성이 담당하는 노동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회구조적으로 대다수의 여성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한편에서는 소비 중심의 가사 전담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상은 배스 미디어의 상업성이 만들어 낸다. 여성은 지배계급의 자본논리에 의하여 여성은 다양한 형태를 상품화되며 여성을 지속적으로 외모 지향적인 사고와 논리속에 묶어둔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매스 미디어 산업은 서로 상부상조함으로써 가부장제가 구현하는 여성상을 창출해 낸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스 미디어는 여성억압 이데올로기의 주요 기제인 셈이다. 그 동안 다수의 여성론자들은 우리 사회에서의 매스 미디어의 역할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매스 미디어는 기존 사회를 지속시키고 통합하는 성적 고정관념을 전달하는 '성차별적 가치전달제'이며,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진실을 음폐, 왜곡하여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달성하는 '가부장적 가치전달제'이자, 나아다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통념을 전달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정당화시키는 '헤게모니적 가치전달제'인 것이다. 어쨌든 텔레비전은 현실 속의 여성의 지위를 더 왜곡하고 정교하게 여성을 억업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텔레비전 세계는 진실하지 않다. 바로 현실을 재구성한 '의사환경(pseudo-environment)'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어떠한가©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이 만들어 낸 여성상 역시 그렇다 절대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는 여성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텔레비전에서 아름답고 섹시하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다. 한술 더 떠서 텔레비전은 끊임없이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방법까지 알려준다.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 누릴 엄청난 혜택까지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광고는 자본주의가 성을 상품화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광고는 마치 여성의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모두 바꿀 수 있다는 신화까지도 창조한다. 날마다 광고는 예쁘고 날씬한 몸매를 갖고 남편에게 성공한 여성들의 모습은 바로 외모가꾸기에 성공한 여성의 모습이다.

"남자는 여성하기 나름이에요" 이것은 수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광고 카티이다. 이 광고는 우리 시대의 똑똑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메시지를 전달했던 최진실은 바로 잘나가는 연기자로,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광고의 위력이다. 여성은 광고 때문에 날마다. 외모를 관리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 이처럼 여성은 광고가 제안한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함으로써 빠져 산다. 외보 가꾸기가 바로 여성의 자아 계발인 동시에 자아실현으로 변모한다. 자본주의와 매스 미디어와의 결합은 바로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재생산해 낸다. 그래서 여성은 '섹스의 도구'라는 최고의 가치로 포장된다. 잘록한 허리를 가진 비비안리, 풍만한 가슴과 섹시한 입술을 가진 소피아 로렌 뇌살적인 눈웃음과 몸매의 마릴린 마돈나 샤론 스톤은 바로 언론이 만들어 낸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이들이 바로 대다수나 여성들이 바라다보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유형의 여성상은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드라마의 많은 여주인공들은 유능하고 전문직 종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아름답고 섹시한 몸매를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사랑 얻기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계는 다른 매체와는 달리 현실감, 현장감이 넘치는 기술적 장치 때문에 그 시대의 지매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강력한 도구이다. 또한 드라마의 주요 타겟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특정한 여성상을 주입시키는 효과가 지대하다. 근래 드라마에서 압도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상은 '아름다운 외모로 가사 일에도 완벽한 일하는 여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을 '수퍼우먼형'이라고 한다. 수퍼우먼 여성상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산물로 여성의 교육 혜택으로 인하여 자아실현의 욕구와 현모양처라는 가부장제 틀 안에서 설정된 여성상이 혼합된 형태이다. 결국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자아실현적 여성상'보다는 '순종적이면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상'이다. 이것은 매스 미디어의 메시지에서뿐만 아니라 매스 미디어 종사자에 대한 요구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앵커우번을 고르는 조건 가운데 외모나 매력이 우선적이었으며, 동시에 지적인 냉철함과 섹시한 모습이 요구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여성 MC에게서도 '전문성' 보다는 오히려 '미모'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속의 여성상에 대한 차별적인 이미지를 수용하게 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실 속에서 여성상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데올로기 상자인 텔레비전을 과감하게 비판하고 거부해야 한다. 텔레비전을 애인같이 사랑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