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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밖에 있는 세상

 

1월 9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한사진이 눙에 들왔다. 노동법 규탄 피켓을 든 한가족의 모습이, 특히 여자 어린아이의 눈망울이 클로즈업되었다. 이 사진은 바로 이 시대의 부끄러운 힘의 놀리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이의 눈망울을 천진하고도 적나라하게 힘센 자의 억압을 비난하고 있다. 온 나라는 지금 날치기 노동법을 규탄하는 파업의 불결로 술렁이고 있다. 1천 2백만 노동자와 2천 5백만 봉급생활자의 생존을 보호자는 외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남편과 아들 딸들의 거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시습적으로 이루어진 '안기부법'과 '노동계법'날치기 처리는 바로 사회의 히미센 권력이 펼칠 수 있는 전형적인 오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우리의 보수 언론들은 이러한 현실을 이 엄청난 사실을 ,이른바 사실 속에 파묻힌 진실의 발견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같다. 오직 지배세력의 입장만을, 그리고 보수층의 이익만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언론에서 크게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는 기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반대로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은 좀퍼럼 관심을 둘 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중요치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언론의 '의제설정기능'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한술 더 떠서 사회 환경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뉴스난 시사물보다는 오히려 드라나와 같은 오락물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가© 이러한 여성의 의식을 정치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의식 불감증' 상태에 있다는 말로 비판해도 좋을까© 여성들은 아직도 정치 불감증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명 여성들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병에 찌들어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노동볍이 날치기 통과되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왜 노동법 규탄 파업과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여성들의 정치 불감증 현상은 한 라디오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온 여성 청취자들의 말에서 잘 알 수있다. "왜 파업으로만 해결 할려고 하는지","시민의 불편을 생각하였음 좋겠다." 그러나 같은 프로그램에서 남성 청취자들은 "생존권을 위한 당여한 시위다", "그동안 노동시위의 성과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무엇인가를 얻어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이런 현상은 프로그램 제작자의 성차별적인 제작의식에서도 나올 수 있다. 또는 현실적으로 노동법 규탄시위에 대한 여성들의 해석이 남성들과 크게 다른 데서 나올수 있다. 동시에 살면서 왜 이토록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19세기의 준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여성의 예속>에서 갈파한 여성의 현실참여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오해되고 있단 말인가© 며칠전 한 TV뉴스는 수천만원하는 수입 모피코트를 구입하는 여성들을 보여주었다. 그토록 엄청나게 비싼 모피 코트를 구입할 수 있는 여성들은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론은 허리 졸라매며 검소하게 살고 있는 이땅의 많은 여성들이 마치 몸에 모피 코트를 휘감는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수많은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영하의 추운 거리에서 생존권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이 시점에서 여성들은 TV속에서 왜 이렇게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가. 정부가 경제파탄 원인을 노동자에게 부과하고 있듯이 언론은 과소비&#40833; 원인을 여성어게 전가시키고 이다. TV는 전체 여성을 과소비의 주범으로 혼돈한다. 마치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변형 근로조건을 만들 때만이 경제가 다시 회생할 것이라고 과신하는 정부의 '날치기' 정책처럼 말이다. 이제 여성정책 담당자들은 여성의 경제적.물질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의 의식개혁 정착에도 관심울 돌여아 한다. 왜 지금 세상이 흥분과 분노로 뒤덮여 있는지를 사회구조적인 맥락에서 정확하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수천만원짜리 모피코트가 더 이상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지 않을 때 다가오는 연말 대선에선 여성의 표몰이용으러 내몰리지 않게 될 것이다. 또 여성들도 더 이상 부엌이나 거실에서 편안하게 안주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기꺼이 일터를 뛰쳐나온 남편과 아들딸들의 가슴시린 저항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져봐야 할 때이다. 이제 부엌에만 머물러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들여다 볼 수 없다. 우리가 적응하고 변화시켜야 할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은 부엌 밖에 있다. 여성들이여, 눈울 들어 부엌 밖의 세상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