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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딸이 아빠

 

"아들은 있어©" 이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상적인 만남속에서 이루어지는 질문이다. "딸딸이 아빠야" 대화가 이런 수준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밤 그 딸딸이 아빠는 스스로 자신이 뭔가 부족한, 그리하여 꽤 불행한 사람이 되어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 남아 선호 사상이라는 것,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왜곡된 사치관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교육밖에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것을 버리지 옷하고 아직도 끌어안고 씨름한단 말인가. TV 드라마에서 조차도 아들이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은 심각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TV드라마 속에서 남자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며, 자식=아들 구도 역시 자연스럽게 설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같은 TV속에서의 성차별 현상을 부정하거나 반박할 시청자 역시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우리의 성차별 현실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10년에는 심각한 신부 부족 파동이 예상 된다고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자아이들이 혼인 적령기에 이르면 1.23 대 1의 경쟁률을 물리쳐야 신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결코 신부를 구하기가 어려운 '신부 파동'으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오늘날보다 남녀차별 현상의 골은 보다 깊어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앞으로 잉여 남편감 중에서 잘나가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여성들은 모든 자아 정체성을 버린 채 열심히 외모가꾸기에 길들여질 것이다. 그 결과 가뜩이나 남자가 많은 세상에서 능력있는 여성들에게 사회참여의 기회는 거의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참여한 여성들에게도 결코 부드러운 사회적 시선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조건 딸을 많이 낳자. 그리고 의식있게 교육시켜서 사회의 요직에 진출시키자"라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소리가 남의 나라 외침같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아들 낳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많은 영아들이 무참히 살해된다는 사실이다. 구 이유는 남아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들 낳기 위한 것이 우리 사회의 으뜸가는 낙태 문제의 골격이다.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폭파, 방화, 살해 등과 같은 폭력적 행위에 대한 보도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90년대 들어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낙태 인구는 미국인의 전체 인 구중에서 33%에 불과하지만 그 투쟁 시위는 위험수위를 훨씬 넘고 있다. 미국 전국 낙태 연맹에 따르면 77년부터 94년까지 미국의 낙태시술소에 대한 폭력 사건은 무려 1700여건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 탓인지 미국 내에서 낙태 수술은 현격히 감소하였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 전반적인 반낙태 움직임은 96년 한해 동안 미국 37개 주에서220건의 중절 금지 법안의 제출, 12개 주에서 이미 낙태 제한 법령이 마련되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낙태 문제는 페미니즘이란 정치학의 학문적 이슈일 뿐아니라 다양한 사회 조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 오래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낙태를 반대하는 범내외적인 규제를 가부장의 권위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낙태 규제가 바로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장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낙태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낙태 자율권이 바로 여성의 미래를 위한 선택권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낙태 문화는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남아 선호 사상에 함몰되어 낙태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태아 성감별에 의한 낙태율이 상당히 높다. 너무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감별에 의한 낙태를 주도하는 부류가 대처로 고학력. 고소득 계층이라는 점이다. 물론 중산층이 남아 선호 사상을 주도한다는 공식적인 집계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일부 중산층의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율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적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결국 낙태의 본질적인 의미를 왜곡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에서 암암리에 자행되는 성감별에 따른 지위 행각에 치명적인 해를 미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낙태 행위는 여성 자신의 건강과 미래의 설계를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낙태를 감행하는지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아들 없어 주눅든 눈치보기식' 낙태를 자발적으로 과감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여성 자신의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