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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뜨거운 감자


연일 대선 예비주자들이 텔레비전 토론이 한창이다. 하나같이 대선 예비주자의 부인은 현모양처의 미소를 보이며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클로즈업된다.

우리는 이처럼 대선주자를 자랑스럽게 지켜보는 부인들처럼 자립심이 강하고 억센, 그래서 '동반자' 같은 이미지를 가진 여성을 부러워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변하고 있다. 정치 현장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정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최근 잇달아 치러진 유럽 선거를 보면 이러한 시대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유럽은 여성의 정치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노동당이 압승한 5월 1일의 영국의 총선에서는 120명의 여성의원과 5명의 여성 각료가 탄생하였다. 사회당이 승리한 6월 1일의 프랑스 총선에서도 63명의 여성이 당선되어 8명이 입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두나라의 선거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들에게 주목하였으며 또 다수의 여성들을 흡수했다는 점이 그들에게 승리의 열쇠를 안겨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여성들을 정책적으로 안았던 이 두 나라의 노동당과 사회당이 승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정치 쟁점과 유권자들의 안목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군사 문제와 같은 외부지행적인 이슈보다는 실업, 사회복지, 범죄 등 구체적인 자신의 삶의 질과 관련된 부 지향적인 이슈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성향의 유권자들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적극적인 정당이나 사람들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다. 최근 서유럽에서 불어닥친 우먼파워는 복지 및 삶의 질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 않게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국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의원의 수는 얼마나 될까©

깜짝 놀라 만큼 적은 숫자다. 현재 우리 나라 여성 의원의 숫자는 전체 의원의 2맥 99명 가운데 9명으로 전체 의원의 3%에 불과하다 이것은 세계 107개국 가운데에 94위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더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여성 의원의 숫자가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이라크와 같은 나라가 보유한 여성 의원들의 수보다 적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여성 유권자들의 숫자는 유권자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의원의 수는 너무 적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안목과 능력을 보유한 여성들을 꼽는데 우리는 단지 열 손가락에 만족해야 한단 말인가. 더욱실망스러운 점은 여성 문제나 여성 정책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입장 표명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여성들의 환경과 당면 문제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들은 여성 정책을 진지하게 구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대선 주자들은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여성 표를 싹쓸이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애정을 할애하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선 주자들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여성 정책에 목을 매어서는 안 된다. 이참에 여성 의원 수의 할당제에 대한 요구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최근 전통과 보수의 관념 속에서 잠자고 있는 서유럽에서 '우먼파워'의 돌풍이 일어나고 있듯이 이 '조용한 나라'에서도 '여걸 행진'의 바람을 일으켜 보자. 우리도 많은 '여걸'들을 키워내야 한다. 아마도 이 여걸들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의 폭죽을 터트려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유용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 중의 하나는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는 일이다. 북유럽을 보자. 금세기 초기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찍부터 여성할당제를 도입하여 높은 여성의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 현재 아이슬랜드는 의희의 50%, 스웨덴과 느르웨이는 4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11명, 노르웨이에는 8명의 여성각료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작은 나라인 대서양상의 바베이도스와 인도양의 세이셜 군도에조차 30%이상의 여성 장관이 재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영국과 프랑스 총선에서의 여성의원들의 수가 2배로 늘어난 것 역시 후보 공천 할당제가 한 몫을 하였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번에 후보의 30% 가량을 여성에게 할당했으며, 향후 10년 안에 여성의원 비율을 50%가지 늘리기도 결의하였다. 프랑스의 사회당에서도 후보자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한다는 내용을 삽입하여 전체 입후보자의 27%를 여성으로 조직하였다. 할당제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의원에 대한 높은 공천율이 곧 높은 당선율을 가져온다는 데 있지 않나 한다. 예컨대 일찍이 여성할당제의 이같은 의미를 살려서 실행한 결과 현재 높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북유럽 여성정책이 바로 할당제의 현실적 의미를 뵤여주고 있다. 한편에서는 할당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할당제 자체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측면과 자격도 없으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개의 자리를 그냥 받는 불평등한 현실 자체라는 측면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할당제는 오랜 세월 누적된 사회적 불평 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제도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 등의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여성들에게 할당제의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은 그런대로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여성문제나 정책은 다루기 힘든 "뜨거운 감자"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의 변화 속에서 보수와 전통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는 없다. 하루 빨리 세계 여기저기의 여걸의 행진에 발맞추어 여성의 힘을 십분 활용하는 정책을 입안할 때이다. 따라서 97년 12월 18일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여성 단체에서는 각 당 후보자들에게 각급 선거에서 여성의 30%, 공천과 당 고위직에 30%의 여성을 임명할 것을 요구하는 할당제 연대 모임을 구성하였다. 이같은 할당제가 어느 정도 현실화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남녀간의 차이를 평균 수명, 교육 수준, 소득 등을 전부 합하여 살펴보는 성별평등지수(GDI) 보면, 97년 우리 나라는 전세계의 35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녀를 서로 비교하여 정치 경제 영역에 얼마나 진출하는지의 성별권한척도(GEM)에서 우리 나라는 고작 세계의 73위에 지나지 않았다. 흔히 정치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권력이자 혜택이라고 한다. 그 동안의 우리 문화에서 당연시 해온 것처럼 정치는 남성들에게만 내려진 혜택은 더 이상 아니다. 남녀가 한자리에서 흥겹게 치뤄낼 뜻있는 잔치다. 정치계에서 남녀 평등이 이루어질 때 여성의 삶은 신명나지 않을까.